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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분석] 국회의원 김무성

기업&사람

by 도시연구소 2015. 7. 11.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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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
1951년 9월 20일 부산 출신이다. 삼동산업 대표이사를 맡다가 1990년 김영삼을 따라 정계에 입문했다. 민주자유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정치인으로 활동했다. 제15대 국회의원으로 당선, 16,17,18대 국회의원을 연임하였으며 19대는 보궐로 당선되었다.

 

5선 국회의원

 

2014년 7월 14일 새누리당 대표최고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약력
1951.09.20. 부산시 부민동 출생
- 부산화랑초등학교 졸업
- 경남중학교 졸업
- 서울중동고등학교 졸업
- 한양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1976. 동해제강 상무-전무
1982. 삼동산업 대표이사 사장
1996. 제15대 총선 국회의원 당선(신한국당)

 

 

정치성향

2003년 이라크전 파병반대에 서명하지 않았다.파병반대에 서명한 의원은 다음과 같다

 

파병반대 서명 의원명단 53명

□ 새천년민주당 : 김명섭, 강운태, 정범구, 조한천, 김성호, 오영식, 송영길, 임종석, 김근태, 천정배, 정철기, 배기운, 김충조, 김태홍, 김경천, 김희선, 이미경, 조배숙, 최영희, 박인상, 이강래, 이창복, 이호웅, 심재권, 신기남, 이재정, 김영환, 설 훈, 송석찬, 조성준, 이희규, 이해찬, 최용규, 전갑길, 최재승(총 35명)

□ 한나라당 : 권오을, 서상섭, 김부겸, 김홍신, 안영근, 전용학, 전재희, 조정무, 이성헌, 이재오, 김영춘, 박명환, 원희룡, 이부영, 박승국, 이우재(총 16명)

□ 국민개혁정당 : 김원웅(총 1명)

□ 무소속 : 오장섭(총 1명)

 

* 김무성을 포함한 대부분의 의원 서명하지 않음

 

 

2004년 총선시민연대에서 발표한 공천 반대 명단에 선정되었다. 낙선대상으로도 선정

 

김무성 (한나라당 부산광역시 남구, 2선, 16대․15대)


한나라당 부산 남구을ㆍ국회의원 - 공천반대자

▣ 부패ㆍ비리

○ 공용주파수통신(TRS) 사업자 선정 비리사건

- 1996년 5월, ㈜서울TRS 이인혁 회장으로부터 수도권지역사업자로 선정될 수 있도록 이석채 정통부 장관에게 청탁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같은 해 7월말 현금 2,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유죄 판결(알선수재)

▪ 1심 : 징역 8월, 집행유예 1년
▪ 2심 : 벌금 1천만원, 추징 2천만원(확정)

▣ 선거법위반

- 2000년 2월 29일 4ㆍ13 총선에서 경쟁후보인 새천년민주당 송정섭 후보에게 현금 500만원이 담긴 돈봉투를 건넨 혐의로 기소

▪ 기부행위로 유죄가 인정되어 1심에서 벌금 80만원, 항소기각 확정

▣ 도덕성/자질

○ 여성비하 발언

- 2002년 7월 12일 장상 총리서리 지명 당시 "대통령이 유고될 경우 총리가 대통령의 직무를 대행하게 될텐데 국방을 모르는 여성 총리가 직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겠느냐"는 발언(03. 3. 1. 한국여성단체연합은 김 의원을 여성권익 걸림돌로 선정)

○ 재산불성실 신고

- 96년 국회재산등록시 불성실 신고(부친명의 토지7필지 미신고)로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로부터 경고 및 시정조치

▣ 반의회/반유권자

○ 대통령탄핵소추안 찬성표결

○ 근거 없는 폭로

- 2003년 10월 18일 대정부질의에서 "개혁당 유시민 의원이 일반인이던 지난 대선 직전 베이징 북한대사관을 수차례 방문해 자료를 받아왔다는 첩보가 있다"고 주장하고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 잠입 등 이적반역 행위"라며 수사를 촉구. 이에 대해 유시민 의원이 출입국관리기록 등 증거자료까지 제시하며 반박하자 "유의원이 제시한 출입국관리소 증명서를 보고, 당에 제보된 내용이 잘못된 것을 인정한다"며 "유의원의 명예를 훼손하게 된 것에 사과한다"고 밝힘

 

출처 : http://www.peoplepower21.org/Politics/530791

http://www.peoplepower21.org/Politics/534162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유출

 

오늘의 주인공은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이다. 2012년 12월 14일, 대통령 선거를 닷새 앞둔 날이었다. 당시 언론은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가 이날 부산유세에서 ‘격돌’했다고 보도했다. ‘격돌’은 어디까지나 문학적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 다른 시간에 서로 다른 장소에서 서로 다른 청중을 향해 각자 하고 싶은 말을 했을 뿐이다. ‘격돌’은커녕 옷깃도 스치지 않았다. 부산 서면은 넓다. 박근혜 후보는 서면 금강제화 앞에서, 문재인 후보는 큰길 건너편 주디스태화 앞에서 유세를 했다. 이날 박근혜 후보 유세에서 김무성 총괄선대본부장은 비를 맞아가면서 울분에 찬 열변을 토해냈다.

 

“최고의 관심을 받고 있는 노무현 김정일 간 대화록을 최초로 공개하겠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북한의 김정일에게 하는 말입니다. “그동안 외국정상의 북측의 이야기가 나왔을 때 북측의 대변인 변호인 노릇을 했고 얼굴을 붉힌 적도 있다. 사고방식이 달라지고 NLL공세는 논리도 없고, 남측에서는 이것을 영토로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헌법문제라는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데 헌법 문제가 절대 아니다. 얼마든지 내가 맞서 나갈 수 있다. 5년 내내 북핵 문제를 둘러싼 북측의 입장을 갖고 싸워왔고 북측입장을 변호해왔다. 분명히 이야기 하는데 방코델타아시아 문제는 미국의 실수인데 북측보고 풀라고 하는데 이것은 부당하다는 것 다 알고 있다. 제일 큰 문제는 미국이다. 역사적으로 제국주의가 반성을 하지 않았고, 오늘날 패권적 야망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에 저항감도 가지고 있다. 작전계획 5029요구하고 있는데 못한다고 없애버렸다. 우리가 경수로 짓자고 말했다. 보고서 써내라고 말했다.” 여러분 잘 들었습니까. 노무현이가 김정일에게 가서 한 말입니다.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제가 여러분 앞에 이 내용을 낭독하면서 북받쳐서 제대로 읽지를 못했습니다. 남측 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이 문재인이었습니다. 문재인이가 노무현과 똑같은 말을 하고 있는데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10년 전에 30%의 지지율로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지 않았습니까. 이번에도 문재인에게 30%의 표를 주겠습니까. 친북 좌파세력이 정권을 잡는 것을 목숨을 걸고 막아야 합니다.

 

그런데 기자들은 이 발언을 보도하지 않았다. 2012년 12월 14일과 15일 포털사이트 뉴스 검색을 해보면 기사가 한 건도 나오지 않는다. 위에 인용한 발언 내용은 <민중의 소리>가 당시 찍어둔 영상을 뒤늦게 찾아내 2013년 6월 26일 보도한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이것은 정문헌 의원의 최초 폭로를 능가하는 엄청난 발언이었다. 나중 국정원이 대화록 전문을 공개한 덕에 우리는 그가 낭독한 것이 발췌본이 아니라 대화록 전문에서 뽑아낸 것임을 확인했다. 김무성 총괄선대본부장이 읽은 문장은 국정원 발췌본에 없고 전문에만 있는 문장이다. 어법과 표현방식이 노무현 대통령의 평소 습관 거의 그대로였다.

 

출처 : 유시민 블로그 <자유인의 서재> http://www.usimin.net/?p=962

 

 

 

김무성 의원은 2013년 6월 26일 열린 새누리당 최고중진회의에서 대화록 유출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해 주었다. 벌써 이십년 가까이 ‘소장개혁파’로 일컬어지고 있는 남경필 의원은 이 회의에서 국정원의 대화록 공개가 적절치 않은 일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김무성 의원은 남경필 의원을 야단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날 <뷰스앤뉴스>가 회의 참석자들을 취재해서 보도한 내용이다. 김무성 의원은 나중에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보도한 기자들을 고소하지도 않았다. 사실상 인정한 것이다.

 

“지난 대선 때 이미 내가 그 대화록을 다 입수해서 읽어봤다. 그걸 몇 페이지 읽다가 손이 떨려서 다 못 읽었다. 그 원문을 보고 우리 내부에서도 회의도 해 봤지만, 우리가 먼저 까면 모양새도 안 좋고 해서 원세훈에게 대화록을 공개하라고 했는데 원세훈이 협조를 안 해줘 가지고 결국 공개를 못한 것이다. 그래서 이게 대선 때 공개가 안 된 것이다. 그런데 내가 너무 화가 나서 대선 당시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후 3시쯤 부산 유세에서 그 대화록을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울부짖듯이 주욱 읽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때 기자들이 많이 와 있었는데도 그걸 기사화하지 않더라. 그때 기자들이 내 발언을 다 녹음도 했을 텐데 왜 그때 그게 보도되지 않은 건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때 공개에 실패한 것이지, 결국 그때 공개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걸 가지고 자꾸 절차적 문제를 삼고 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이번에 확실히 이걸 강력히 밀고나가 진실을 가려야 한다.” 

 

2012년 12월 14일 부산유세에서 자기가 대화록을 최초 공개했다는 사실을 김무성 의원은 분명하게 확인했다. 그런데 박근혜 후보 총괄선대본부장 김무성이 대화록을 공개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한마디로 선거판세가 혼미했기 때문이다. 선거법에 따라 여론조사 공표가 금지되기 직전이었던 12월 12일 많은 언론사들이 여론조사를 했다. 이 마지막 여론조사에서 문재인후보가 박근혜 후보를 다 따라잡은 결과가 다수 나왔다. 게다가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이 터져서 여론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언론들은 그날 오전 새누리당 당사에서 김무성 총괄선대본부장이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는 사진을 앞 다투어 보도했다. 

 

출처 : 유시민 블로그 <자유인의 서재> http://www.usimin.net/?p=962

 

 

김무성 가계 비판

- 유시민은 그의 블로그에서 대화록을 유출한 김무성을 비판하며, 그의 가계를 언급하였다.

 

김무성 의원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김무성은 1951년 부산 태생으로 한양대 경영학과를 나온 5선 국회의원이다. 그는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행운아였다. 아버지 김용주는 전남방직주식회사의 창업주였다. 아버지를 잘 만난 덕분에 스물여섯 살에 동해제강(주)이라는 회사 상무가 되었으며 서른두 살에 삼동산업(주) 사장이 되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전두환 정권 때 김영삼을 찾아가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홈페이지에서 1987년 6월민주항쟁의 주역이었음을 자랑한다.

 

통일민주당 총무국장 등 당직자로 지내던 김무성은 1987년 12월 제13대 대통령선거에서 김영삼 후보 선대위 재정국장을 맡아 ‘돈 만지는 일’을 했다. 이런 일은 대통령 후보가 전적으로 믿는 ‘측근 중의 측근’이 한다. 김영삼 후보가 2등으로 낙선하는 바람에 빛을 보지 못했던 김무성은 김영삼이 노태우, 김종필과 손잡고 민자당을 창당한 후부터 정치적 탄탄대로에 올라섰다. 1993년 김영삼 대통령 취임 후 청와대 민정비서관과 내무부차관 등을 지낸 후 1996년 제15대 총선부터 부산 남구에서 내리 3선을 했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공천을 받지 못하자 탈당해 ‘친박무소속연대’를 내걸고 당선된 후 한나라당에 복귀했다. 2012년 19대 총선에 불출마했지만 2013년 4월 부산 영도 재선거에 나가 5선 국회의원이 되었다. 한나라당 시절 그는 사무총장, 최고위원, 원내대표를 두루 섭렵했으며 ‘친박좌장’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잠시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박근혜 후보는 그를 총괄선대본부장으로 기용함으로써 전폭적인 신뢰를 주었다.

 

김무성 의원은 대한민국 ‘뼈대 있는 가문’의 후예이다. 아버지 김용주는 일제강점기 경북도회 의원, 조선임전보국단 간부였다. 전쟁에 나간 ‘황군’에게 위문편지 보내는 운동을 폈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해방 후 뛰어난 수완을 발휘해 일본인들이 두고 떠난 소위 ‘적산(敵産)’ 전남방직을 불하받아 부자가 되었다. 그 회사를 물려받은 김무성의 형 김창성은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풍전등화 위기에 빠진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에게 염창동 당사를 빌려주었고 박정희대통령 기념사업에도 참여했다.

 

친가뿐만 아니라 외가도 화려하다. 김무성 의원은 OO일보 방OO 회장과 ‘내외종(內外從)’이다. 김무성 의원의 어머니가 방OO 회장의 고모라서 그렇다. 김무성은 방OO에게 고종사촌, 방OO은 김무성에게 외사촌이다. 김무성의 집안은 현대그룹과 사돈이다. 김무성의 누나가 현대상선 현영원 회장과 혼인했다. 그 딸이 금강산관광 중단으로 5년 넘게 큰 곤경을 겪고 있는 현정은 회장이다. 김무성 의원이 현정은 회장의 외삼촌인 것이다. 처가도 만만치 않다. 김무성 의원의 부인은 만주군관학교 출신으로서 이승만 대통령 비서관과 자유당정권 공보처장, 박정희 시대 국회의원 3선을 한 최치환의 딸이다. (* OO일보사로부터 권리침해 신고(명예훼손)를 받아 글이 차단 조치가 된 적이 있어, OO일보로 바꾸었다. 유시민의 블로그에서 원문을 볼 수 있다)

 

‘가문의 영광’을 배경에 놓고 보면 김무성 의원의 용기는 더욱 돋보인다. 보통 사람들은 이 정도 되면 자기 자신을 매우 중요한 인물로 여기게 된다. 생각과 행동을 신중하게 하면서 남의 비난을 듣거나 치명적 공격을 당할 수 있는 행동을 삼간다. 자기는 더 큰 일을 해야 하는 중요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무성 의원은 정반대로 갔다. 젊어서는 박해받던 야당 지도자 김영삼을 도우면서 정치를 시작했다. 4선 국회의원 경력을 바탕으로 당 대표, 대통령 후보에 도전하겠다는 야망을 품기에 손색이 없는 상황에서, 국가기밀 누설 혐의로 무거운 처벌을 받을 위험을 무릅쓰고 박근혜 후보 유세차에 올라 ‘대화록을 낭독’했다.

 

‘선공후사(先公後私)’ ‘멸사봉공(滅私奉公)’의 투철한 신념과 빛나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라야 할 수 있는 행동이다. 나는 김무성 의원을 좋아하지 않지만 이런 태도만큼은 인간적인 면에서 높이 평가한다. 영화 브레이브 하트에서 멜 깁슨은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목숨을 걸었다. 정치드라마 ‘NLL전투’에서 김무성은 박근혜 후보의 대통령 당선을 위해 정치생명을 걸었다. 박근혜에게 대든 적도 있었지만, ‘친일-반공-보수세력의 총아’인 인간 김무성의 ‘대의(大義)’에 대한 충성심과 열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출처 : 유시민 블로그 <자유인의 서재> http://www.usimin.net/?p=962

 

 

 

둘째 딸 논란

- 둘째 딸 김모씨가 2013년 7월 수원대 조교수로 선발되었는데, 지원자격을 충족하지 못했음에도 선발되었다고 해 논란이 일고 있다.

기사 : http://m.media.daum.net/m/media/society/newsview/20140825044606496

 

 

무간도설

<나는 꼼수다>에서 김어준은 “4·11총선에서 반박인 듯 행세하다 돌연 ‘백의종군’ 선언을 하며 자신을 중심으로 모여들었던 비박, 반박 의원들을 주저앉힌 김 전 의원은 ‘트로이의 목마’다”라며 “사실은 박근혜 측 인사지만 반박, 비박인 듯 행세해 결국 당의 분열을 막아 지난 18대 총선에 이어 19대 총선에서도 박근혜 대선 후보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고 말했다. 그 후 김무성의 연관 검색어로 무간도가 뜨고 있다.

참조 : http://www.newspost.kr/news/articleView.html?idxno=11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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