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경성의 5대 백화점(화신, 조지아, 미츠코시, 히라타, 미나카이)

도시계획/도시계획산책

by CITY 2020. 7. 17. 13:13

본문

반응형

경성의 5대 백화점

 

미쯔코시(미츠코시三越, 삼월), 조지아, 히라다, 미나카이(미나까이), 화신백화점

이 가운데 4개는 일본인이 만들었으며, 조선인이 만든 최초의 백화점은 화신백화점이었다.

 

경성 5개 백화점 표시 지도Department Store’s location around Mitsukoshi Keijo Branch, Daegyeongseong Jeongdo, 1936

 

 

1904년 일본에서 최초로 백화점을 설립했던 미쓰코시가 1929년 9월 충무로의 3층 목조건물에서 있던 미쓰코시백화점 출장소를 지점으로 승격시킨 후 1930년 10월 24일 지금의 신세계백화점(본점) 자리에 경성 미쓰코시백화점이 준공시킨 것이 우리나라에 최초로 등장한 백화점이다. 미쓰코시 백화점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백화점으로 보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미쓰코시백화점의 체계화된 영업 및 관리조직이다. 이는 근대적 백화점의 대표적 특징으로 후일 동아백화점, 화신백화점 등 민족자본으로 형성된 백화점 경영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김병도 외(2006), <한국 백화점 역사>, 서울대학교출판부, p.48, 54.

 

 

1926년 히리다(平田)백화점, 1929년 9월 조지야(丁子屋)백화점, 1911년 미나카이(三中井) 오복점(吳服店)도 1929년 점포를 증축하여 백화점으로 전신, 1906 년 경성에 출장소를 설치한 일본 최대의 백화점 미츠코시(三越)도 1930년 10월에 정식으로 백화점을 개업했다. 그림13참조. 출처:오진석 2004, 「일제하 백화점 업계의 동향과 관계인들의 생활양식」, <일제의 식민지배와 일상생활>, 혜안, pp.127-128.

 

 

1904년경에 서울에 진출한 히라다(平田)상점은 1926년 주식회사로 변경하면서 히라다 백화점을 만들었다. 히라다 상점과 같은 해 서울에 개점한 조지야(丁字屋)도 1921년 주식회사로 전환한 후 1929년 9월 남대문로(현재 롯데백화점 영플라자)에 본점을 증축하고 백화점을 개업했다. 1905년 대구에서 시작, 1911년 충무로에 들어온 미나카이(三中井) 역시 1922년 미나카이 오복점에서 주식회사로 변경하고 1929년 조직을 증축했다. 미쓰코시도 다른 상점들과 마찬가지로 1906년 서울에 임시출장소를 마련해서 영업하다가 1916년 르네상스식 3층 건물을 짓고 1925년에 건물을 증축했다. 그리고 1930년 10월, 충무로 입구(현 신세계백화점)에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의 신관을 건립했다.

1930년대 초, 북촌에도 백화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최남은 종로 2정목 5번지에 지하 1층, 지상 4층(총건평 508평)의 동아백화점을 세우고 1932년 1월 4일부터 영업을 개시했다. 이어 박흥식도 1932년 5월 10일, 화신백화점을 시작했다.

1930년대 중반이 되면 인구가 30만에 불과한 서울에 백화점은 북촌에 화신, 남촌에 미쓰코시, 조지야, 미나카이, 히라다 다섯 개나 되었다. 당시 경영부진으로 동아백화점을 화신에 넘겨주어야 했던 최남은 백화점의 증가가 소매상과 백화점 양쪽에 다 좋지 않다고 비판했다.

인구 15만인 평양에 조지야, 미나카이, 김응수의 평안백화점이 있었고, 부산이나 10만이 겨우 될까 말까한 대구, 목포, 흥남, 군산, 광주, 대전에도 미나카이나 조지야가 진출해 있었다.


출처 : <백화점 전성시대>

 

미츠코시백화점

1930년 10월 24일 건축 사용승인을 받았다. 지하1층 지상6층의 건물이며, 대지면적은 2,410제곱미터, 연면적은 13,457제곱미터이다.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최초의 백화점이다. 건물은 아직도 남아있다. 동화백화점이 되어 해방 이후 미군정에 귀속되었다가 1958년 조선방직에 불하되었고, 1962년 동방생명을 거쳐 1963년 7월 삼성그룹으로 넘어갔다. 지금은 신세계백화점 본점이다.  

 

미츠코시백화점

 

1936년 이상이 발표한 <날개>에서 주인공이 배회하는 곳 가운데 하나로 나온다.

 

나는 어디로 어디로 들입다 쏘다녔는지 하나도 모른다. 다만 몇 시간 후에 내가 미쓰꼬시 옥상에 있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거의 대낮이었다. 나는 거기 아무 데나 주저앉아서 내 자라 온 스물여섯 해를 회고하여 보았다. 몽롱한 기억 속에서는 이렇다는 아무 제목도 불그러져 나오지 않았다. 나는 또 나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너는 인생에 무슨 욕심이 있느냐고. 그러나 있다고도 없다고도, 그런 대답은 하기가 싫었다. 나는 거의 나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기조차도 어려웠다. 

허리를 굽혀서 나는 그저 금붕어나 들여다보고 있었다. 금붕어는 잘 참들 키웠다...

나는 또 회탁의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불현듯이 겨드랑이가 가렵다. 아하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 오늘은 없는 이 날개, 머릿속에서는 희망과 야심의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너리 넘어가듯 번뜩였다.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러고 어디 한번 이렇게 외쳐 보고 싶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소설에는 작가의 경험이 녹아있다. 이상은 기생인 금홍을 만나 같이 살았는데, 금홍의 본명은 날개에 나오는 주인공의 아내와 같은 이름인 '연심'이었다. 이상의 여동생 김옥희는 이상과 금홍의 모습이 <날개>에 나오는 삶 그대로라 했다.

 

1910년 서울에서 태어난 이상은 작가이면서 시인, 건축 기사였으며 본명은 김해경이다. 1933년 결핵에 걸리자 건축 기수직을 그만 두고 배천온천에서 병을 이기기 위해 본격적으 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상의 불행한 삶은 이때부터 가속도가 붙어 씻지도 가꾸지도 않고 이불 속에서 주로 뒹굴며 살았다고 한다. 요양지에서 만난 기생 금홍을 데리고 와 1936년 조광지에 <날개>를 발표하자 큰 화제를 일으켰다. 이후 결혼을 하고 도쿄로 떠나나 불온사상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고 도쿄대학교 부속병원에서 병사했다. 소설 <환시기>, <지주회 시>, <실화>등이 있고, 시에는 <거울>, <이런 시>, <정식>, <지비>, <명경>, 수필은 <권태>, <산촌여정>, <조춘점묘>등이 주요 작품이다(네이버 지식백과. 2019. 11. 15).

 

<날개>는 이상의 자전적 소설이다. 이상의 여동생 김옥희(2010)가 <문예운동>을 통해 밝힌 실제 이상의 모습을 <날개>의 주인공 ‘나’와 아내 매춘부 ‘연심’의 삶으로 그대로 옮겨 적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주인공 ‘나’의 원가족 배경은 실제 이상의 삶을 대체한다...

아내 ‘연심’은 1936 년에 <지주회사>, <날개>, <봉별기> 등에 등장하는 기생 ‘금홍’의 실제 본명이다. <날개>는 기생 ‘금홍’과의 만남과 동거, 이별을 그린 작가 개인의 체험을 기반으로 씌어졌다고 했다 (서세림, 2016). 이상이 23세에 결핵으로 친구인 화가 구본웅과 함께 요양 차 황해도 연안 의 배천온천을 찾아간 것이 그 증거이다. 여동생 김옥희(2010)가 증언하듯 이상은 <날개> 의 주인공 ‘나’처럼 1933년 건축 기수직을 사임한 이후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기태적으로 변한다. 머리가 항상 수세미처럼 엉켜 있고 팔도 제대로 꿰지 않은 채 외투를 입고 다니고 사계절 내내 흰 구두 한 켤래로 난적도 있다고 한다.

정혜영, <이상의 소설 〈날개〉로 보는 관계정신분석>

 

 

미츠코시백화점은 영화 <암살>에서 미츠코가 처음 등장하는 곳으로도 나온다.

 

 

근대도시 풍경 : 미쓰코시백화점 + 경성우편국 + 조선은행

 

서울중앙우체국 앞 안내판

 

엽서 : 미츠코시백화점(우), 경성우편국(좌)

 

르네상스풍의 화려한 벽돌 건물로 미츠코시백화점 왼편으로 보이는 근대 건축은 경성우편국이다. 1950년대 한국전쟁 당시 파손되어 철거되었다. 2007년 포스트타워(서울중앙우체국)가 들어섰다.

 

참 요사이 무슨 좋은 일 있소. 맞은편의 경성우편국 3층 건물을 바라보며 구보는 생각난 듯이 물었다.

박태원,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1934년

 

 

서울중앙우체국

 

 

 

신세계백화점 본점

 

건축 평면도

 

2006년 8월 남쪽에 신관이 오픈되어 지하와 브릿지로 연결되어 있다.

 

신세계백화점 본점

 

2019년 신세계백화점 본점의 매출은 7,788억원이었다. 우리나라 백화점 가운데 10번째로 높은 매출이었다.

 

조지아백화점

경성의 조지아백화점

 

미도파(美都波) 백화점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에 있었던 백화점이다. 현재의 롯데백화점 영플라자 명동점의 자리에 있었다. 이 백화점은 1933년 일제시대에 조지야(丁子屋)백화점으로 일본인에 의해 세워져 미쓰코시(三越, 1931년), 화신(和信, 1932년) 백화점과 함께 3대 백화점이었다. 1945년에 해방을 맞으면서 이 건물은 귀속재산으로 온갖 우여곡절을 겪어오다가 1954년부터 무역협회가 인수하여 일부는 사무실로, 일부는 임대백화점으로 영업해 왔다. 그 후 1964년 미도파는 주식회사로 무역협회로부터 독립, 1969년 4월 15일, 대한농산그룹에서 인수해서 주식회사 미도파(당시 대표 조인상)로 1972년말 기준 직영 50%, 임대 50% 비율로 영업을 계속해 왔다. 2002년 롯데로 넘어가 2003년 롯데 미도파로 이름을 바꾸어 운영해오다가 2013년 롯데쇼핑과 합병함으로써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출처 : 위키백과

 

조지아백화점(정자옥백화점)은 중앙백화점을 거쳐 미도파백화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현재는 롯데 영플라자가 되었다.

 

1946년 조지아 백화점에서 중앙백화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1954년 4월 대한부동산주식회사가 건물을 인수해 백화점으로 재단장하며 미도파백화점이라는 이름이 나타났다.

 

미도파백화점 시절

미도파 백화점은 국내 4대 백화점으로 성장했으나, 1997년 외국인 투자자와 연계한 신동방그룹 측의 적대적 M&A에 맞서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비싼 주식을 매입하느라 무리하게 자금을 투입한 결과 1999년 파산을 맞아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2002년 공개 매각 절차에 들어가 롯데쇼핑, 현대, 신세계, 삼성플라자가 참여해 최종 롯데쇼핑에 매각되었다.

*삼성플라자 :  삼성그룹 산하의 삼성물산에서 운영하던 백화점으로 1997년 처음 분당점을 개점했으나 2007년 애경그룹(AK)에 매각했다.

 

1970년 미도파백화점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1/07/2018110703334.html

 

1959년 미도파백화점을 방문한 이승만 대통령, 국가기록원

 

<한국의 발견 : 서울> '한국의 돈고랑, 중구'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청-일 전쟁을 고비로 하여 청나라의 원 세개가 몰고 온 중국 세력과 그 뒤를 이어 들어온 일본 제국주의 세력은 이미 시가가 꽉 짜여 버린 종로구보다 손에 넣기가 훨씬 쉬웠을 중구를 차지하여 개발했다. 그에 따라 소공동에는 '화교촌'이, 남대문 주변과 명동과 충무로 일대에는 '일인 상가'가 터를 잡았고 지금의 신세계 백화점 자리에 '삼월' 백화점이, 내무부에서 청사로 썼다가 이제는 외환 은행 본점 건물이 들어서면서 헐려 버린 건물에 동양 척식 주식 회사가, 지금의 미도파 백화점 건물에 '정자옥' 백화점이, 그리고 지금의 한국 은행 건물을 조선 은행이 짓고 저마다 들어섬으로써 한국의 '돈고랑'이 종로에서 중구-일본 사람들이 서울의 중심이라고 하여 그렇게 이름 붙였다-로 옮겨졌다.

 

 

화신백화점

화신백화점

 

일본 자본이 독식하던 백화점 업계에 평남의 대지주의 아들 박흥식이 '화신상회'를 인수해 엘리베이터가 있는 콘크리트 3층의 근대식 건물로 확장한 것이 1932년인데, 이로써 경성에는 5대 백화점이 성업중이었다. 1933년 2월의 통계에 따르면 미쓰코시, 화신, 조지아 세 백화점을 방문한 고객은 합계 34만 명에 이를 정도로 활황세였다.
<조선 사람의 조선여행>

 

 

백화점 식당-그곳은 원래, 그리 불행하다거나, 슬프다거나 그러한 사람들이 오는 곳이 아니다. 하루하루를 평온무사하게 보낼 수 있었던 사람, 얼마간이라도 행복을 스스로 느낄 수 있었던 사람, 그러한 이들이, 더러는 아내를 동반하고, 또는 친구와 모여서,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에는 자녀들을 이끌고, 결코 오랜 시간을 유난스럽게 즐기기에는 적당치 않은 이곳을 찾아온다
박태원, <천변풍경> - 화신상회의 백화점 식당을 말한다.

 

화신상회는 크게 4가지 모습이 있다.

 

첫번째, 신태화가 운영할 때의 화신상회

두번째, 1931년 박흥식이 경영권을 갖게 된 후, 3층 콘크리트 건물로 개축한 뒤의 모습

세번째, 동쪽에 있는 동아백화점을 인수해 건물 2동을 연결한 모습

네번째, 1935년 화재 후 서관을 다시 지어 1937년 7층 건물이 된 모습

 

이를 끝으로 화신백화점은 1987년 철거되었다.

 

화신상회(신태화), 1920년대 후반의 모습

출처 : 화신오십년사편찬위원회 : (1977), <화신50년사:1926~1976>, 화신산업주식회사

화신상회, 1920년대 후반으로 박흥식이 인수하기 전의 모습이다.

 

화신상회(박흥식 인수 후), 콘크리트 3층 건물로 다시 지었다

화신상회 인수 후 3층으로 개축한 모습이다.

 

동아백화점 인수 후의 모습이다

 

동아백화점 인수 후의 모습이다

동아백화점을 인수한 후 두 건물을 연결한 모습이다.

 

서관을 공사하는 모습이다.

화재 후 서관을 공사하는 모습이다.

 

 

 

전관 개점 당일 화신백화점(1937년 11월)

 

목조 4층 건물이던 화신백화점에 큰 화재가 난 것은 제1차 연쇄점 선정결과를 발표한 지 채 1개월도 안 된 1935년 1월 27일 오후 7시 30분이었다. 동관,서관 중 서관 건물에 이웃한 빈터에 있던 허술한 사과 창고에서 처음 불이 났는데 과일장수가 촛불을 켜놓고 그대로 둔 것이 원인이었다. 
손정목,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1>

 

손정목 교수가 1935년 화신백화점 화재 당시 목조 4층 건물이었다고 한 것은 착오로 보인다. 1935년 화재로 철거하기 전까지 화신백화점은 콘크리트 3층 건물이었다.

 

화신상회 1959년 모습(왼쪽)

 

화신상회 1973년도 모습

출처 : 국가기록원

1973년 종로 네거리 화신백화점과 화신 앞 번화가의 모습

 

1935년 화신백화점이 불타고 1937년 다시 지었을 때 이를 설계한 사람은 근대 건축가 '박길륭'이었다. 이 건물은 1978년 공평구역 재개발 구역에 포함되어 1987년 3월에 철거되었다. 이 자리에 새로 지어지는 건물은 처음에는 신세계 백화점 종로점으로 계획했으나 이후 오피스 건물인 종로 타워로 바뀌었다.

 

2020/07/08 - [도시계획/도시계획산책] - 서울시 공평구역 재개발 역사

 

서울시 공평구역 재개발 역사

붉은색으로 표시된 구역에는 종로타워가 들어서 있다. 붉은색으로 표시된 지역에 종로타워가 들어서있다. 오늘날 지도와 비교해보면 계획대로 재개발된 곳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화��

invisiblecity.tistory.com

손정목은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1>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20세기 전반기 이 나라를 대표하는 기업가가 박흥식이었다면 20세기 후반을 대표하는 기업가가 삼성재벌의 창시자 이병철이라는 점에 이의를 갖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난날 화신백화점이 그 위용을 자랑했던 바로 그 자리에 지금 이병철의 딸 이명희가 제1주주로 있는 신세계백화점 종로점이 건설되고 있음을 보고 인간의 영고성쇠를 새삼 실감한다.

 

화신백화점

"개관 첫날 이른 아침부터 귀부인, 유한마담에서부터 룸펜에 이르기까지 장안 사람들은 물밀듯이 화신 문전에로 몰려들어 온다."(대중잡지 '삼천리' 1935년 9월호)

 

1935년 9월호에 실린 화신은 화재 후 동관의 문을 다시 열었을 때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종로타워

1995년 착공해 1999년 9월 문을 열었다. 지하 2층, 지상 33층인데 23층 다음이 바로 33층이다. (그러나 건축물대장에는 24층으로 표기) 연면적은 60,653제곱미터.

 

종로타워 건축물대장 표제부

 

경성 시절부터 있던 화신백화점이 철거된 자리여서인지 삼성은 처음에 '신세계백화점 종로점'으로 계획했으나, IMF 여파로 설계도가 몇차례 변경되었고, 용도는 오피스로 바뀌었다. 2002년까지 국세청이 입주해 있어 '국세청빌딩'이라 불리기도 했다. 2015년 이지스자산운용에 3,700억원에 매각되었다가 2019년 KB자산운용에 4,637억원에 넘어갔다.

 

2019년 매매 4,637억원

 

2018년부터 31% 면적을 위워크가 사용했으나, 2020년 6월 철수 의사를 밝혔다. (손정의 曰 "위워크 투자는 어리석은 일이었다") 1~2층에는 바리스타만 30명인 국내 최대 스타벅스 매장, '더종로R점'이 있다.

 

 

히라다 백화점

히라다(平田)상점은 1904년경 서울에 진출했고, 1926년 주식회사로 변경하면서 히라다 백화점을 만들었다. 지금은 철거되었고, 현재는 고려대연각타워 자리라고 한다. '고려대 연각타워'가 아니라 '고려 대연각타워'이다. 고려대와 무관하다.

 

고려대연각타워

해방 후 1946년 서울만물전이 들어섰다가 1947년 3월 18일 화재로 전소했다. 1969년 극동건설이 '대연각빌딩'을 지었다. 1971년 12월 25일(하필 크리스마스날) 166명 사망자를 낸 최악의 화재사고가 발생했고, 복구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빌딩은 현재 고려통상이 소요하고 있다.

 

1960년대 들어 무학성 캬바레가 자리잡다가 1967년에 극동건설이 그 자리에 '대연각빌딩'을 착공해 1969년 준공 후 앞면은 호텔, 뒷면은 오피스텔로 각각 사용했다.

1971년 화재사고 후 문을 닫고 복구작업을 거쳐 1974년 '빅토리아호텔'로 영업하다 이듬해 이강학이 이끄는 해외산업이 호텔을 인수해 리모델링 작업을 거친 후 고려대연각타워가 되었고, 이에 따라 운영법인 (주)빅토리아호텔은 1976년 '대연각관광', 1978년 '대연각물산'을 거쳐 1982년 '고려통상'이 되었다.

현재 고려대연각타워는 고려통상이 소유하고 있으며, 외국 대사관 및 공관들이 입주하고 있다. 1974~1982년까지 한국투자신탁, 1983~1986년까지 금성투자금융도 각각 이 빌딩에 본사를 뒀다.
출처 : 나무위키

 

서울만물전 화재

출처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47031900329202008&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47-03-19&officeId=00032&pageNo=2&printNo=140&publishType=00020

 

대연각호텔 화재

 

1971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날 오전 9시 50분 1층 커피숍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호텔안에 있던 300여명 가운데 100명은 목숨을 건졌으나, 총 사망자 166명(추락사 38명), 부상자 68명, 실종 25명으로 전세계 호텔 화재 가운데 최대 사고였다. MBC 뉴스데스크가 이를 생중계 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생중계 방송이 시작된 사건이었다.

 

서울 충무로1가 25의4에 22층으로 세워진 연건평 1만1백80평의 대규모 대연 각 호텔은 객실이 2백22개로 지난67년 건축허가를 받아 16억 원을 들여 69년 완공, 이해 늦게 호텔로 개업을 했는데 보험회사평가액은 18억5천만 원이다.

대연 각이 세워진 이 자리는 67년까지 무학성 카바레이었으며 극동건설이 무학성 카바레를 헐고 이 자리에 대연 각 호텔을 세운 것인데 무학성 카바레 전신인 고미 파 카바레 때에도 불이 일어나 건물이 전소되었었다.

 

 

미나카이 백화점

미나카이는 1905년 대구 오복점을 시작으로 1911년 충무로에 진출했으며 1922년 주식회사로 전환해 백화점이 되었다. 충무로에 지어진 미나카이백화점의 현재 위치는 밀리오레 자리라고 한다.

 

*오복점五服店은 포목점으로 백화점으로 발달하기 전 모습이었다.

 

미나카이백화점이 있던 자리

 

 

공시지가 비교

경성의 백화점 5곳의 입지는 오늘날 어떤 평가를 받고 있을까? 가격면에서 평가를 알아보기 위해 공시지가를 낮은 순서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2020년 1월 기준 공시지가

5. 미츠코시백화점(신세계백화점본관) : 39,800,000원/제곱미터

4. 히라다백화점(고려대연각타워) : 49,200,000원/제곱미터

3. 화신백화점(종로타워) : 58,900,000원/제곱미터

2. 조지아백화점(롯데영플라자) : 60,200,000원/제곱미터

1. 미나카이백화점(밀리오레 명동) : 181,300,000원/제곱미터

 

가장 비싼 땅값을 자랑하는 명동

 

땅값이 가장 싼 신세계백화점 본관도 공시지가로 평당 1.3억원은 하며(시세는 그 이상), 밀리오레 명동은 평당 6억원(시세는 그 이상)이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땅 역시 명동에 있으며, 17년째 네이처리퍼블릭이 들어있는 건물(명동애타워)이 차지하고 있다. 표준지 공시지가는 평당 6.6억원(시세는 그 이상)이다. 표준지 공시지가 현실화율은 65.5%이므로 공시지가는 시세의 대략 2/3 수준이라 볼 수 있다.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